언론보도 및 뉴스

메디피스의 언론보도와 새로운 소식을 전달합니다.

언론보도 및 뉴스

국내

[연합뉴스] 사할린 동포 2세 자매 '우린 죽어서도 한국인'

관리자 2026.06.25 조회 26

일자 : 2011-02-24



사할린 동포 2세 자매 "우린 죽어서도 한국인"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1-02-24 11:50 | 최종수정 2011-02-24 13:27

 

사할린 동포 2세 자매 "우린 죽어서도 한국인"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의료봉사단체인 메디피스의 지원을 받아 암수술차 한국에 온 사할린 한인 2세 조옥주(58.왼쪽)씨와 간호차 따라온 언니 옥순씨. 2011.2.24 noanoa@yna.co.kr

 

"2세에게도 영주귀국 혜택 줬으면.."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한국은 뭘 해도 좋아요. 겨울조차 따뜻한 걸요. 우린 뼛속까지, 죽어서도 한국인이에요"

 

의료봉사단체인 메디피스의 도움으로 암 수술을 위해 한국에 와 경기도 안산의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사할린 동포 2세 조옥주(58)씨와 간호차 따라온 언니 옥순(63)씨 자매는 24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할린 땅에서 살며 겪은 굴곡의 인생사를 앞다퉈 털어놨다.

 

일본 홋카이도 북쪽 오호츠크 해에 있는 사할린은 한민족의 한이 서린 78크기의 러시아 섬.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탄광과 군수공장에서 혹사당하다 1945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못한 한인 1세와 그 후손 43천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조씨 자매의 부모도 1940년대 초 일본에 머물던 중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일제의 꾐에 빠져 각자 사할린으로 건너갔다가 패망한 일본이 자국민만을 배에 싣고 떠나는 바람에 그대로 발이 묶였다.

 

1947년 결혼한 조씨의 부모는 우글레고르스크라는 조그만 탄광 마을에 집을 얻고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며 7남매를 키웠다.

 

오죽하면 `고려인은 바위에 올려놓아도 꽃을 피운다'는 러시아 속담이 생겨났을까.

 

언니 옥순씨는 "조선인들은 정말 독하게 일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로 내려가는 땅에서 닭, 돼지를 키우고 보리와 감자도 심고, 돈 되는 건 다했다고 한다"라며 "얼마 전 강원도에 눈이 1왔다던데 그건 눈도 아니다. 우린 눈 쌓이면 땅굴을 파듯 눈을 뚫고 다녔다"고 했다.

 

동생 옥주씨도 "어릴 때부터 `카레이스키(고려인)'라고 무시당하면서 싸울 일도 많았다"면서 "러시아 애들은 방학 때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가는데 우리는 여권이 없어서 멀리 가지 못했고, 똑같이 일해도 러시아인이 받는 돈의 절반밖에 못 받고 살았다"고 거들었다.

 

러시아 국적을 얻으면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조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1975, 1989년 눈을 감을 때까지 조선인으로 남았다.

 

옥순씨는 "아버지는 `문만 열리면 맨발로라도 조국으로 돌아가자'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면서 "어머니는 3년만 더 사셨으면 고국 땅을 밟아보셨을 텐데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옥주씨는 1990년 한국이 소련과 수교를 맺고 사할린에 고려인 문화센터가 세워지자 한국어 읽기ㆍ쓰기를 배웠고 1991년 배우 김지미씨가 주연한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 촬영팀이 사할린에 오자 40일 동안 통역을 맡았었다.

 

그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3년 사할린 동포 처녀가 한국의 농촌 총각과 만나는데 통역사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이듬해는 6차례나 사할린의 보따리 장사 200여명과 함께 부산에 와 통역을 맡기도 했다.

 

옥주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김치를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반찬 없이 김치만 먹어도 좋았다"면서 "사할린의 김치는 배추도 다르고, 중앙아시아에서 수입한 고춧가루가 너무 매워서 허옇게, 조금만 넣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매년 여름 한국인 역사탐방단이 오면 통역과 가이드를 맡아 가교 역할을 계속하면서 한국에 살던 친척과도 상봉해 지금까지 30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했으며 지난달 27일에는 폐암수술을 받기 위해 언니와 함께 입국했다.

 

2천만원에 가까운 수술비는 메디피스가 서울아산병원과 협조해 절반이나 낮춰줬고, 수술 결과도 성공적이라고 한다.

 

25일 사할린으로 돌아가는 이들 자매의 소원은 영주귀국이다.

 

한ㆍ일 정부는 1994년부터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사업'을 벌여 1945815일 해방 당시 사할린에 거주했거나 출생한 1세대는 한국행 비행기표부터 임대주택, 생활비와 의료비까지 모두 지원한다.

 

하지만 7남매 가운데 첫째인 옥순씨가 1948년 태어났고 1세대인 부모는 이미 숨졌기에 이들은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조씨 자매는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모두 한국으로 이사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내 조국, 내 고향이 한국이란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말을 맺었다.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