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 메디피스 이상미 세네갈 프로젝트 리더
얼마 전 8월 19일 유엔이 정한 세계 인도주의의 날(Wolrd Humanitarian Day)도 있었는데, 인도주의의 날이란 2003년 8월 19일, 이라크 바그다드 UN 본부에서 폭탄 테러로 인도주의 활동가 22명이 희생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Wolrd Humanitarian Day)은 수많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날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자(활동가)’들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겠죠?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라 함은 갈등, 자연재해, 전염병, 보건 시설이나 인프라 붕괴 등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세계인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을 말하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현재 세네갈의 위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메디피스 이상미 부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인터뷰 2편✨

【▲베트남에서 사업 수행 시에 업무 협약식 사진】
Q. 이 부장님은 언제부터 인도주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나요?
이상미- 지난 2012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것을 알고 계셨던 대학의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2012년에 연구소로 이직을 했고요.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우리 정부의 질병관리청 사업을 주로 맡아서 했었는데, 갑자기 국제보건연구소를 만드는 기획안, 제안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국제 사업 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군요. 지금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상미-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서류 작업에 치어 살았어요. 사실 국제 사업이라고 해도 서류 작업하면서는 글자로밖에 와 닿지 않아서 별 감흥이 없다가 국제 사업 처음 제안했던 게 채택이 돼서 DR콩고라는 아프리카 대륙의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으로 직접 현장을 보러 간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콩고 민주 공화국에는 어떤 사업을 진행하러 가셨나요?
이상미- 콩고민주공화국에 말라리아 퇴치 사업 건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저희 사업 지역은 또 수도와 엄청나게 떨어져서 더 낙후된 지방이었어요. 가서 사진 영상으로는 크게 체감을 못 했던 말라리아 때문에 상복부 팽만이 심한 아이들의 모습을 실제로 정말 쪼끄마한 아이들이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3~40분 걸어서 물을 간신히 떠 오는 걸 보게 되고, 그 물도 안 깨끗하고 먹을 것도 별로 없는 이런 환경에서 저도 며칠이지만 살아보니 체감이 확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고 결국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Q. 그 뒤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활동하셨으니 베테랑이 다 되었을 것 같은데,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로서 살아온 삶, 어떤가요?
이상미- 음. 10건이 넘는 사업을 진행하였어도 늘 쉽진 않아요. 내려놔야 할 것도 많고요.

【▲페루의 로레토지역, 벨렌구의 아마존 강 건너편 마을 방문 시에 동행한 지역 도시경찰과 함께】
Q. 어떤 걸 내려놔야 하나요?
이상미- 일단 경제적인 부분을 좀 내려놓게 되죠. 간호사 생활을 하다가 이쪽으로 오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웃음). 그리고 해외 현지로 파견을 나가면 삶의 많은 부분, 예를 들어 문화적인 것 등등 내려놔야 할 게 아주 많은 반면에 불편한 것들도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의 방향을 많이 수정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삶이 아니게 된 거죠.
Q. 결국은 인생관? 사명감?
이런 것이 뚜렷하지 않으면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미- 그렇죠. 남들이 보기에는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고 해외 출장, 이런 것만 보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러면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월하게 뭐 하나가 싹 풀리는 경우가 없어요.
그래서 인생관과 하는 일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렇지만 그렇게 지치는 와중에 하나씩의 기쁨이 있습니다.

【 ▲베트남 안과검진사업 때 IAPB(세계안보건협회)에서 Eye Heatlh Hero로 수상】
Q. 기쁜 일이라면 어떤 게 있었나요?
이상미- 2년여 전 메디피스 입사하고 난 뒤의 기쁨은 사업지가 점점 늘면서 후배 활동가들에게 뭔가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라든가, 제가 열심히 가르쳤던 후배들이 많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기쁘고요. 다른 걸로는 얼마 전 베트남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그 사업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찾아오셔서 알려주신 것이 있겠네요.
Q. 베트남 사업 조금 자세히 들려주세요.
이상미- 제가 과거 베트남 사업에 몇 번 참여했는데, 그중에 한 지방의 ‘안과 조기 검진’을 해 주는 사업이 있었어요. 그 사업이 끝나고 한참 뒤인 지난해에 제가 다른 사업으로 베트남에 갔었는데 한 분이 찾아오셔서 과거의 안과 조기 검진 사업 때 본인의 망막에 흑색종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발견 못 했으면 뇌로 전이돼서 죽을 수도 있는 문제였는데 덕분에 예방했다고 고마워하시더라고요.
Q.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을 하신 것 같아요!
이상미- 그렇게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을 하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해나갈 수 있는 거죠.(웃음)

【▲지역사회 안과검진 프로그램 종료 후 보건소 의사들과 한 컷 (베트남)】
Q. 활동가의 일이 어려움이 많을 수 있지만 앞으로 그런 걸 감수하고 인도주의 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이상미- 저희 세대에서도 저 같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저도 활동가의 삶을 사는 것처럼 어쨌든 같이 사는 삶이고, 저희 일은 같이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같이 사는 것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점점 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게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이쪽 일을 하기 원하는 청년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Q. 궁금한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메디피스의 인도주의 활동을 항상 응원해주시는 후원인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 해 주세요.😉
이상미- 저는 현장에 있는 사람만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관심을 표현하고 지원해 주시는 분들도 모두 활동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활동가로서 각자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동료인 저희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해주시는데 대해 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고 함께 간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트남에서 꽝찌보건대 교사들과 프로그램 진행 후 함께 한 컷】
》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인도주의 활동가로 활발하게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이상미 부장님의 진솔한 얘기를 만나보았는데요, 메디피스의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주의 정신을 가지고 의미있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상미 부장의 세네갈 프로젝트 및 다양한 메디피스 활동가들의 소식도 기다려주세요.👉
<인터뷰 2> 메디피스 이상미 세네갈 프로젝트 리더
얼마 전 8월 19일 유엔이 정한 세계 인도주의의 날(Wolrd Humanitarian Day)도 있었는데, 인도주의의 날이란 2003년 8월 19일, 이라크 바그다드 UN 본부에서 폭탄 테러로 인도주의 활동가 22명이 희생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Wolrd Humanitarian Day)은 수많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날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자(활동가)’들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겠죠?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라 함은 갈등, 자연재해, 전염병, 보건 시설이나 인프라 붕괴 등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세계인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을 말하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현재 세네갈의 위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메디피스 이상미 부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인터뷰 2편✨
【▲베트남에서 사업 수행 시에 업무 협약식 사진】
Q. 이 부장님은 언제부터 인도주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나요?
이상미- 지난 2012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것을 알고 계셨던 대학의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2012년에 연구소로 이직을 했고요.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우리 정부의 질병관리청 사업을 주로 맡아서 했었는데, 갑자기 국제보건연구소를 만드는 기획안, 제안서를 쓰면서 처음으로 국제 사업 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그렇군요. 지금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상미-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서류 작업에 치어 살았어요. 사실 국제 사업이라고 해도 서류 작업하면서는 글자로밖에 와 닿지 않아서 별 감흥이 없다가 국제 사업 처음 제안했던 게 채택이 돼서 DR콩고라는 아프리카 대륙의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으로 직접 현장을 보러 간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콩고 민주 공화국에는 어떤 사업을 진행하러 가셨나요?
이상미- 콩고민주공화국에 말라리아 퇴치 사업 건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저희 사업 지역은 또 수도와 엄청나게 떨어져서 더 낙후된 지방이었어요. 가서 사진 영상으로는 크게 체감을 못 했던 말라리아 때문에 상복부 팽만이 심한 아이들의 모습을 실제로 정말 쪼끄마한 아이들이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3~40분 걸어서 물을 간신히 떠 오는 걸 보게 되고, 그 물도 안 깨끗하고 먹을 것도 별로 없는 이런 환경에서 저도 며칠이지만 살아보니 체감이 확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고 결국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Q. 그 뒤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활동하셨으니 베테랑이 다 되었을 것 같은데,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로서 살아온 삶, 어떤가요?
이상미- 음. 10건이 넘는 사업을 진행하였어도 늘 쉽진 않아요. 내려놔야 할 것도 많고요.
【▲페루의 로레토지역, 벨렌구의 아마존 강 건너편 마을 방문 시에 동행한 지역 도시경찰과 함께】
Q. 어떤 걸 내려놔야 하나요?
이상미- 일단 경제적인 부분을 좀 내려놓게 되죠. 간호사 생활을 하다가 이쪽으로 오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습니다(웃음). 그리고 해외 현지로 파견을 나가면 삶의 많은 부분, 예를 들어 문화적인 것 등등 내려놔야 할 게 아주 많은 반면에 불편한 것들도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의 방향을 많이 수정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삶이 아니게 된 거죠.
Q. 결국은 인생관? 사명감?
이런 것이 뚜렷하지 않으면 국제 인도주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미- 그렇죠. 남들이 보기에는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고 해외 출장, 이런 것만 보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러면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월하게 뭐 하나가 싹 풀리는 경우가 없어요.
그래서 인생관과 하는 일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렇지만 그렇게 지치는 와중에 하나씩의 기쁨이 있습니다.
【 ▲베트남 안과검진사업 때 IAPB(세계안보건협회)에서 Eye Heatlh Hero로 수상】
Q. 기쁜 일이라면 어떤 게 있었나요?
이상미- 2년여 전 메디피스 입사하고 난 뒤의 기쁨은 사업지가 점점 늘면서 후배 활동가들에게 뭔가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라든가, 제가 열심히 가르쳤던 후배들이 많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기쁘고요. 다른 걸로는 얼마 전 베트남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그 사업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찾아오셔서 알려주신 것이 있겠네요.
Q. 베트남 사업 조금 자세히 들려주세요.
이상미- 제가 과거 베트남 사업에 몇 번 참여했는데, 그중에 한 지방의 ‘안과 조기 검진’을 해 주는 사업이 있었어요. 그 사업이 끝나고 한참 뒤인 지난해에 제가 다른 사업으로 베트남에 갔었는데 한 분이 찾아오셔서 과거의 안과 조기 검진 사업 때 본인의 망막에 흑색종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발견 못 했으면 뇌로 전이돼서 죽을 수도 있는 문제였는데 덕분에 예방했다고 고마워하시더라고요.
Q.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을 하신 것 같아요!
이상미- 그렇게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을 하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해나갈 수 있는 거죠.(웃음)
【▲지역사회 안과검진 프로그램 종료 후 보건소 의사들과 한 컷 (베트남)】
Q. 활동가의 일이 어려움이 많을 수 있지만 앞으로 그런 걸 감수하고 인도주의 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이상미- 저희 세대에서도 저 같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저도 활동가의 삶을 사는 것처럼 어쨌든 같이 사는 삶이고, 저희 일은 같이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같이 사는 것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점점 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게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이쪽 일을 하기 원하는 청년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Q. 궁금한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메디피스의 인도주의 활동을 항상 응원해주시는 후원인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 해 주세요.😉
이상미- 저는 현장에 있는 사람만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관심을 표현하고 지원해 주시는 분들도 모두 활동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활동가로서 각자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동료인 저희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해주시는데 대해 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고 함께 간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트남에서 꽝찌보건대 교사들과 프로그램 진행 후 함께 한 컷】
》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인도주의 활동가로 활발하게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이상미 부장님의 진솔한 얘기를 만나보았는데요, 메디피스의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주의 정신을 가지고 의미있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상미 부장의 세네갈 프로젝트 및 다양한 메디피스 활동가들의 소식도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