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영웅은 흰 가운을 입는다 - 구스타보 병원장 이야기

2018-08-31

파라과이 산페드로 주 산타로사 시에 위치한 파라과이-한국병원 사후평가 출장을 다녀온 메디피스 탁상우 사업국장이 작성한 수기입니다.


파라과이의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페드로 주의 산타로사 시에는 과거 시내 한복판에 보건소가 있었다고 한다한국 정부와 파라과이 정부는 이 보건소를 시 외곽으로 옮기며 종합병원급의 의료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을 진행했고이렇게 지어진 병원이 지금의 파라과이-한국병원이다메디피스는 지난 84일부터 12일까지 경희대학교와 공동으로 사후평가팀을 꾸려 이곳에 현지 조사를 다녀왔다


사후평가는 보통 프로젝트가 종료된 지 2, 3년 후에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이 프로젝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병원 완공 후 6년이 다 되어서야 사후평가를 실시하게 되었다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지어진 산페드로 한-파병원은 약 100 병상 규모의 지역 병원으로 응급실 및 산과수술실이 운영되고 있고210명의 의료 인력 중 의사만 현재 99명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지역의 종합병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병원에 들어가며 마주친 개들은 여느 저개발국에서 볼 수 있는 의료시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작지도 않은 개들이 늘어져서 바닥에 뒹굴며 한가함을 만끽하는 풍경과 이를 눈감아주는 파라과이 주민들의 너그러움이 한편 부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은 병원이 완공된 이래 3년 동안 병원장이 5번이나 바뀌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던 달갑지 않은 기억이 있다병원 운영과장 마리아 에밀리 씨의 말에 따르면수도 아순시온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이라 보건부 관료로 승진하고 싶어하는 의사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란다하지만 지금의 병원장은 다르다산타로사 시 주민위원회 의장이기도 한 마리아 에밀리 과장의 소개로 만난 구스타보 병원장은 가히 이번 출장에서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구스타보 박사는 마취과 의사이다대부분의 수술을 위해서는 마취과 의사의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병원장 직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반길 만한 전문인력이다. “저는 다른 병원장들과는 달리 수평적 의사소통을 합니다.” 구스타보 박사가 전하는 그만의 경영방식이다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아예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물론 수평적 의사소통이 절대적인 선이라 할 수도 없다. 전투에 임하는 군대가 수평적 소통을 통해서 작전을 세우고 병력을 조직하고 훈련한다고 하면, 절대로 현대군에 요구되는 기동력과 전투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현대 조직 사회에서 무수한 변화와 도전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요구 받는 소통 방식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평적 소통일 것이다.


구스타보 병원장은 모든 과장들과 관리자급 직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병원 내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을 의논한다정기적인 주간회의 외에도 수시로 병원 관리자들과 전체 대면회의를 통해 원내 각종 현안을 상의하고 공통의 결론을 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짧게나마 내가 본 구스타보 병원장은 큰 키에 젊지만 잦은 웃음에서 만들어진 주름으로 사람을 반기고 호감을 끌어내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다. 말을 많이 하지도 길게 하지도 않는다. 손님이기에 격식을 갖추지만,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다. 혹여 말실수라도 하면 면박을 들을 것 같은 거리감도 느껴진다.




경험상 개발원조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수혜기관을 방문할 때 흔히 보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너무나 훌륭한 사업이고이로 인한 순영향이 너무나도 많다고 강조하는 것이 한 가지고여전히 미흡한 요소들을 지적하며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호소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하지만 구스타보 병원장은 그런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병원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들을 나열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힘주어 얘기했다병원에 대한 주인의식의 반영이라고 짐작해 본다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약품을 거의 100% 보유하고 지급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병원장행정부원장인 리치 씨는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모두 병원장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수도 아순시온에 있는 보건부를 매주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고그 외에도 필요한 경우 수시로 보건부를 방문하여 요구사항을 반복해 결국은 협조를 받아내는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이는 파라과이 중앙 정부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는 아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인정 때문이리라. 실제로 구스타보 병원장 부임 이후 병원에서 보건부로 제출한 지원 요청 공문의 숫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모두 정성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너무 잦은 공문으로 인해 중앙 정부 관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나보다는 병원 먼저’ 라는 생각이 앞섰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병원장과의 간단한 면담 이후에 만난 산타로사 시 의회 의장단은 병원 건립 이후에 목격한 여러 가지 경험을 얘기하며앞으로 이 병원을 위해 지역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하려고 하는지도 설명했다. 더불어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금의 산페드로 병원을 만들기 위해 구스타보 병원장이 기울인 노력이 지대했음을 강조하며 준비해 온 감사장을 수여하는 기념식을 약식으로 진행했다. 한국으로 치면, 시골의 한 보건소를 시의회 의장이 방문하여 보건소장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격이다. 평가팀을 위한 깜짝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진심에는 의심이 가지 않는다.


오는 10월이면 병원장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고 전하는 운영과장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다불안하냐고 묻자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이제는 병원이 운영체계가 안정되었기 때문에누가 병원장으로 와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이 있다. 병원 부지 내에 새롭게 들어오는 아순시온 의과대학 분원과 암연구센터 등을 생각하면, 누군가 출세욕이 많은 사람이 와서 병원을 자신의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주민 건강과 치료는 뒷전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먼 나라의 사정만은 아닌 듯하다.


돌아오는 길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어딜 가도 잘되는 집에는 나보다는 가족과 남을 더 살피고 조용히 봉사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가 있다나는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이번에도 또 한 명의 영웅을 만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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