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CTOR] 한국 의학도 지구촌 의료를 보다. 베트남 의료지원 동행기 -전인표 전문위원 기고글
2010-04-15
한국 의학도, 지구촌 의료를 보다. 베트남 의료지원 동행기 ⑤
베트남 광찌성 여린 현, 8만 명의 도시에 고엽제피해자가 2,200명, 그 중 아동이 1,010명이 있다. 재활센터를 방문한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드디어 가정방문을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3일 동안 10개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약 1,000명의 아동들 중에서 겨우 열 가정을 방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했다. 열심히 돌아다니면 하루에도 이삼십 가정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가정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첫 가정으로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 여린 현의 중심부를 벗어나자 노면이 상당히 나빠졌다. 속도를 거의 못 내면서 한참을 가니 마을 중심부인 보건소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고엽제피해아동의 집까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논둑길을 걸어야 했다.
한 아이의 가정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이러니 하루에 열 가구는커녕 네 가구 방문하기도 빠듯한 것이다. 30여 명의 자료를 모아 통계치를 만들어보자는, 한국의 카페에 앉아 세웠던 계획들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렇 다면 이 마을에 들어온 김에 바로 옆집이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전반적인 의료 상황을 파악해보자는 응급처방을 세웠다. 하지만 의료조사라는 특수한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베트남, 공산주의 국가였던 것이다.
개방형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길가의 붉은 깃발이나 선전 포스터들에서 밖에 공산주의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문진 정도까지 제한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우리가 만나는 고엽제피해아동들도 지역 정부에서 허가가 난 아이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길이나 시설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까지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국제보건활동에는 보통 3종류의 전문가가 있다. 첫째로 의료 전문가, 에이즈나 B형 간염처럼 질병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이다. 둘째로 행정 전문가가 있다. 프로젝트의 기획 및 예산을 짜고 전반적인 진행을 맡는다. 셋째로 현지 전문가가 있다. 현지 언어에 매우 능숙하고 현지 인맥을 갖고 있으며 현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베트남 전문가처럼 국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동안 의료 전문가가 제일 중요하고 나머지는 보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언어나 인맥은 둘째 치더라도 현지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 없이는 절대 현실로 구현 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현지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 의학도, 지구촌 의료를 보다. 베트남 의료지원 동행기 ⑥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참을 걸어 고엽제피해아동의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쾌한 밖과는 너무도 다르게 어둡고 칙칙한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동굴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집 안에는 다 헤진 모기장과 나무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 아이가 그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옆에 있던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같이 간 선생님의 진단은 뇌성마비로 인한 하반신 마비에 지적발달장애였다. 어머니 말로는 아이가 그동안 제대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했으며 현재활센터를 몇 번 다녀 봤지만 효과가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생활비와 재활치료 및 기구를 부탁하는 어머니를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고엽제피해아동과 그 가족들은 가난과 부족한 의료서비스로 인해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한 논문에 의하면, 고엽제 피해자 가정의 연 수입이 일반 가정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엽제 피해자 중 40%가 그리고 고엽제 피해아동의 50%가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 가지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고엽제 피해자 가정의 의료지출액이 일반 가정보다 31% 높다는 점에서도 고엽제에 의한 질병이 이들의 가난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 때문에 고엽제 피해아동들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의 96%가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면 의료비로 사용하겠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정리하면, 우리는 이 고엽제 피해자들이 갇혀있는 악의 순환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엽제 피해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가정경제를 어렵게 하고, 이 가난한 가정의 아이는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이 가진 장애와 건강은 더 악화된다.
메디피스가 보건의료 NGO인 만큼 이들에게 재활치료라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재활치료라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장기간에 걸쳐 제공해, 몇 년 후 우리가 활동하지 않더라도 이 사업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고민을 고엽제피해아동을 만난 그날부터 해오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갇히게 된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 인 표 공중보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