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커틀랜드 로빈슨 (Courtland Robinson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난민 및 재난대처 연구센터 교수)
일자 : 2011-11-01
링크 :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0
청만사]1960년 서울, 난민구호 전문가 꿈 키운 이방인 소년 - 청년의사

다섯 살배기 소년 커틀랜드 로빈슨이 서울에 도착한 것은 1960년, 7년 전 끝난 전쟁에서 남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거리였다. 세브란스병원에 의사로 근무할 아버지를 따라온 그는 11년 간 서울에서 살았다. 한국 친구들과 음식들도 기억하지만 북한에서 내려온 난민들이 방황하던 모습도 기억한다.
1971년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마치고, 난민구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만났던 전쟁난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국으로 오려 했지만 1970년대 당시 인도차이나, 베트남 전쟁 이후 태국 난민캠프에서 일하게 됐다. 그의 아내는 이 때 만난 태국 여성이다. 이후 그는 중국, 베트남, 라오스, 버마 등 아시아 전 지역에서 활동했다.
“아시아를 사랑하게 된 것,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어린 시절 한국에서 있었던 경험에서 온 거죠.”
지난 8일부터 주말마다 열리는 제2기 국제재난대응전문가 과정에 강사로 참여하기 위해 연세대 보건대학원을 찾은 로빈슨 교수는 올해 뿐 아니라 거의 매년 한국을 찾는 국제난민전문가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산하 난민 및 재난대처연구센터에서 국제난민 구호와 재난대처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이자 활동가로, 북한 탈북 난민 문제에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올해로 두 번째로 진행되는 국제재난대응전문가 과정은 글로벌 보건의료 NGO인 메디피스와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함께 마련한 것으로 국제 재난 대응전문가를 꿈꾸거나 네트워크와 노하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난민 구호 전문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먹고 살 만하면 어려운 사람 생각하기 마련
로빈슨 교수를 만난 것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구호전문가들과 탈북 난민의 실태와 운동방향을 의논하는 자리. 자리가 파하고 같이 어울렸던 이들이 먼저 ‘소주파티’를 하러 자리를 뜬 후, 기꺼이 인터뷰 시간을 내어준 로빈슨 교수는 이미 많은 한국의사들과도 친분을 갖고 있다.
중국, 혹은 한국에 들어온 탈북 난민과 북한의 열악한 공중보건, 빈곤 등의 문제는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국제재난대응전문가들에게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난민구호전문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우리나라도 이젠 제대로 된 전문가를 길러보겠다며 나선 것인데, 이렇게 나,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난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생활 혹은 사회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일까.
“국가들은 때로 가족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요. 당장 내가, 혹은 내 나라가 의식주나 생존은 해결될 정도로 상황이 호전되면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능이죠.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어요. 때가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 일은 새로운 책임을 가져옵니다. 일찌감치 국제재난구호에 관심을 가진 서양에서도 개발 원조와 인도적 활동 원조 등에서 엄청난 실수들을 저질렀어요. 때로는 다른 이들의 시행착오에서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겠죠.”
그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로 여러 나라 동료들과 앉아서 서로 어떤 일들을 해왔으며 그 중 효과가 있었던 일, 없었던 일,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수로부터 배우고,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난민 문제와 재난 구호에 대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이번 과정이 바로 그런 자리인 셈이다.
인구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역할
“(아버지가 아닌 그가 의사라고 착각한 기자의 질문에) 의사(MD)가 아니라 박사(PhD)입니다, 하하. (재미있어하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일을 인구 단위로 하고 있죠. 의사가 체온을 재고 혀를 보며 환자들을 검사하는 것처럼 저는 가정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인구 단위의 건강 문제와 위험성을 진단하죠.”
난민 구호에서는 의료인들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인들을 난민 구호현장에서 더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지금까지 한국이 이뤄온 성과로 인해 나눌 수 있는 자원이 생겼으니 전문 지식과 경험을 필요한 이들과 더 많이 함께 나눌 수 있으면 한다고.
그는 한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서 탈북 난민 문제에 접근하는 외국 연구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1997년 북한 대기근 이후 꾸준히 북한 난민을 보호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른 나라 난민들을 위해서도 하고 있는 일이지만 탈북 난민을 위한 일에는 좀 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14년 째 꾸준히 관여하다보니 북한 관련 이슈에 좀 더 많은 경험이 쌓여서,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하는 것 같다고.
이날 있었던 컨퍼런스도 탈북 난민과 북한 국민들,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내용이었다. 북한 국민이나 혹은 탈북 난민 심지어 한국으로 이주한 난민들과 관련해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 생겨 국제 문제가 되기 전에 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 난민들은 오랫동안 고생스러운 경험을 했고 그 영향으로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열악하다. 북한 내 주민들과 중국 내(연변 포함), 한국 이주 북한 난민들에 건강을 호전시키고 이들이 가진 질환이 전염성인지, 정신적인지 파악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들이 병을 가지고 있고 그 병을 한국으로 갖고 온다”는 식의 배척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의 건강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동등해질 수 있도록 공공 보건 대응을 실시하기 위해서다. 당장은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북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통일에 다가가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북한 난민과 국민들의 건강상황과 보건 실태 파악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로빈슨 교수는 곧 이뤄질 중국 연변 탈북난민 관련 사업에도 관여할 예정이다. 50년 전, 다섯 살 소년이 보았던 한국의 비극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대신 그 때와 다름없이 철저히 비극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사람들을 도와야한다고 느꼈던 순수한 소년의 마음으로 우리 동족들을 돕기 위해 나선 이방인의 눈빛이 따뜻하게 빛났다.